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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3나노 반도체와 AI 초격차_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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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화의 끝, 3나노의 문턱을 넘다

2020년대 초, 반도체 산업은 인간 기술력의 극한에 도달했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5나노(㎚), 3나노로 진입하며
원자 몇 개 두께의 세계로 들어섰다.
더 이상 줄이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한계를
업계는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 기술로 돌파했다.

EUV 리소그래피는 파장이 13.5nm에 불과한 빛을 이용해
초정밀 회로를 새긴다.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 한 대의 가격은 약 2,000억 원.
그러나 이 장비 없이는 3나노 공정을 구현할 수 없다.
결국 EUV는 첨단 반도체의 ‘목줄’을 쥔 기술이 되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세계 최초로 3나노 GAA(Gate-All-Around) 공정 양산을 선언했고,
TSMC 역시 2023년 N3 공정을 출시하며
“3나노 경쟁”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공정 기술은 물리적 영역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경계선으로 들어섰다.

■ GAA 구조 – 트랜지스터의 새로운 진화

3나노 시대의 핵심은 GAA(Gate-All-Around) 구조다.
이는 FinFET(지느러미 형)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형태로,
전류 통로를 네 면에서 완전히 감싸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 덕분에 누설전류가 최소화되고,
전력 효율은 높아졌다.
즉, “더 이상 평면적으로 제어할 수 없던 전자를
완전히 3차원 공간 안에 가둬두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은 MBCFET(Multi Bridge Channel FET) 기술을 통해
트랜지스터를 ‘가늘고 여러 개의 다리’로 세워 효율을 높였다.
이 공정은 스마트폰 AP, AI 칩, 서버 CPU에 적용되어
전력 대비 성능(PPA, Power Performance Area)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더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하게 통제하는 시대.”

■ 칩렛과 패키징, 그리고 수직의 시대

공정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자,
기업들은 칩을 나누고 쌓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칩렛(Chiplet) 과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기술이다.

이전 세대 반도체가 ‘한 장짜리 칩’이었다면,
이제는 여러 개의 칩을 연결해 하나의 논리적 칩처럼 동작시킨다.
AMD의 ‘Infinity Fabric’, 인텔의 ‘Foveros’,
TSMC의 ‘CoWoS’·‘SoIC’ 기술이 그 대표다.

특히 AI 서버용 GPU들은
HBM 메모리를 수직 적층하여 GPU 다이에 직접 붙이는 구조를 취한다.
이 방식은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이고
발열을 효율적으로 분산시켜,
AI 연산 속도를 수십 배 높인다.

즉, 칩의 혁신은 평면에서 입체로 옮겨간 것이다.

■ AI 슈퍼 칩의 탄생 – GPU의 제왕 엔비디아

2020년대 반도체 시장의 절대적 주인공은 단연 엔비디아(NVIDIA)다.
엔비디아의 GPU는 이제 그래픽 카드가 아니라
AI의 ‘두뇌 칩’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2023년, 엔비디아는 H100 GPU를 출시했다.
이 칩 한 개에 들어간 트랜지스터 수는 800억 개,
성능은 전 세대 대비 3~4배 향상.
HBM3 메모리와 CoWoS 패키징으로 구성된 H100은
ChatGPT·Claude·Gemini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학습시키는
‘AI 슈퍼 칩’으로 불렸다.

AI 붐이 일면서 GPU 수요는 폭발했고,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AI 전력 인프라(전력망, 냉각, 배터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전력의 위기 – AI 시대의 새로운 병목

AI 모델이 커질수록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GPT-3 모델(2020)은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학습시켰다.
이를 학습하는 데 필요한 전력은 한 소형 도시의 한 달 사용량에 달한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은
‘저전력 AI 반도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흐름이 스파이킹 뉴럴 네트워크(Spiking Neural Network)기반의
뉴로모픽 칩이다.
이 칩은 인간 뇌처럼 이벤트 발생 시에만 전력을 사용하므로
기존 대비 전력 효율이 수백 배 높다.

또한, 데이터센터는 수냉식·액침식 냉각 기술을 채택하고,
심지어 해저나 북극 근처에 센터를 지어
냉각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 신소재와 새로운 가능성 – 포스트 실리콘

실리콘 기반 반도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를 대신할 차세대 소재로는
그래핀(Graphene), 게르마늄-실리콘 합금(SiGe),
질화갈륨(GaN), 산화갈륨(Ga₂O₃) 등이 연구 중이다.

특히 GaN은 높은 전압과 고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 인피니언로옴(Rohm) 등은
전기차 충전기·데이터센터 전원 공급 장치용으로 GaN 기반 칩을 상용화했다.

이 소재 혁신은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반도체 생태계를 위한 방향 전환이기도 하다.

“반도체의 다음 시대는 실리콘이 아닌,
인간이 만든 새로운 원소의 조합으로 빚어질 것이다.”

■ 국가 전략산업으로의 진화

2020년대 반도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외교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미국은 2022년 ‘CHIPS and Science Act(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
국내 생산 유치에 5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중국은 ‘반도체 굴기’ 정책으로
독자 공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은 메모리 강국에서 시스템 반도체까지 확장하려 하며,
삼성과 SK하이닉스가 2030년까지 500조 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반도체는 기술의 영역을 넘어
경제와 안보, 에너지의 교차점에 서 있다.

■ AI 시대의 반도체 철학

3나노, HBM, 칩렛, 뉴로모픽 —
이 모든 기술의 공통점은 하나다.
‘한계를 마주한 인간의 끈질긴 발상’이다.

더 작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이 단순한 목표는 이제
‘인간의 사고를 닮은 반도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반도체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상상력의 역사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기술, 그것이 미래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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