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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발열과 전력의 한계 – 열과의 전쟁_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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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의 법칙, 성공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기

1980년대 중반, 반도체 업계는 무어의 법칙을 완벽히 신봉하고 있었다.
“18개월마다 트랜지스터 수를 두 배로” — 이 말은 일종의 산업 종교가 되었다.

공정은 3㎛에서 1㎛, 그리고 0.8㎛로 줄어들며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수백만 개에 이르렀다.
CPU의 클럭 속도는 10MHz를 넘어 100MHz에 근접했고,
PC는 드디어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속도의 축복’은 동시에 ‘열의 저주’를 불러왔다.
트랜지스터가 작아지고, 빠르게 스위칭할수록
칩은 마치 작은 난로처럼 뜨거워졌다.
이 시기는 “열과의 전쟁이 본격화된 시대”였다.

■ 발열의 역습 — 성능이 오를수록 불안정해지다

트랜지스터가 미세화되면,
스위칭 속도는 빨라지지만 누설(leakage current) 현상도 함께 커진다.
즉, 꺼져 있어야 할 회로에 전자가 새어나가면서
의도치 않은 전류 흐름이 발생한다.

이는 곧 열로 변환된다.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동시에 작동하는 칩 안에서
이 누설전류가 쌓이면 내부 온도는 수백 도에 달할 수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방열판, 팬, 히트싱크, 심지어 액체 냉각까지 동원했지만
열은 끊임없이 다시 쌓였다.
이때부터 반도체 설계의 핵심 키워드는 “고클럭”이 아니라
“발열 제어와 전력 효율”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 클럭 속도의 경쟁 — 메가헤르츠 전쟁

1990년대 초, 인텔과 AMD는 클럭 속도 경쟁에 돌입했다.
“더 빠른 CPU가 곧 더 좋은 CPU다.”
이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전 세계 PC 시장을 뒤흔들었다.

인텔 486 → 펜티엄(Pentium) → 펜티엄 II, III로 이어지며
클럭은 33MHz, 66MHz, 133MHz, 300MHz, 1GHz까지 치솟았다.
소비자는 숫자에 열광했고, 제조사는 전력과 열에 시달렸다.

문제는, 클럭을 올릴수록 전력 소모는 지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전력(P)은 전압² × 주파수에 비례한다.
즉, 주파수를 2배로 늘리면 소비전력은 4배로 늘어난다.
결국, 고클럭 경쟁은 “속도 1단 올릴 때마다 발열은 두 단 오르는” 모순 구조였다.

■ 모바일 이전의 세상 — 전력효율은 잊혀졌다

이 시기의 컴퓨터는 대부분 데스크톱이었다.
즉, 전원은 콘센트에서 무한히 공급되고, 배터리 효율은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CPU는 “전력 제한 없는 무한 질주”가 가능했다.

그러나 동시에 칩의 발열로 인해 팬 소음은 커졌고,
노트북은 뜨거워서 무릎 위에 올려두기 힘들 정도였다.
전력 효율을 무시한 시대의 대가는 분명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 인텔은 “클럭 경쟁의 종말”을 선언한다.
1GHz를 돌파한 이후부터는
열이 더 이상 제어되지 않았고, 성능 향상의 한계가 찾아왔다.

■ RISC 아키텍처 — 효율의 철학이 시작되다

이 시기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바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구조의 등장이었다.
기존의 CISC(Complex) 구조는
명령어를 많이 담아 한 번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었지만,
RISC는 반대로 “단순한 명령어를 빠르게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이었던 RISC 구조는
전력 소모를 줄이고, 발열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후 이 개념은 ARM, MIPS 같은 모바일·내장 칩에 적용되어
훗날 스마트폰 반도체의 뼈대가 된다.

즉, “덜 복잡하게, 더 효율적으로” —
이는 발열 문제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기도 했다.

■ 공정의 혁신 — 1㎛의 벽을 깨다

기술적으로도 대전환이 일어났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포토리소그래피의 정밀도가 극적으로 향상되며
공정은 0.8㎛ → 0.5㎛ → 0.35㎛로 진입한다.

회로가 미세해지면서 속도는 빨라졌지만,
앞서 언급한 발열과 누설전류 문제가 다시 심화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재료와 공정 기술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예가 저유전율 절연막(Low-k Dielectric)과
고유전율 게이트(High-k Gate) 기술이다.
이 소재들은 전류 간섭을 줄이고 열전도를 완화시켜
칩의 안정성을 크게 높였다.

또한, 듀얼 게이트 구조와 멀티 레벨 금속 배선 기술이 등장하면서
칩의 크기를 줄이면서도 신호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 DRAM과 플래시 — 저장의 새로운 시대

1980~90년대는 CPU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특히 일본과 한국이 주도한 DRAM 경쟁이 뜨거웠다.

일본이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
삼성전자는 “메모리 독립”을 선언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1983년, 삼성은 64Kb DRAM을 개발하며
세계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b DRAM 양산에 성공하며
‘메모리 왕국’ 한국의 시대가 열린다.

또한, 1987년 도시바가 발표한 NAND 플래시 메모리는
데이터를 전원 없이도 저장할 수 있는 기술로
오늘날 USB, SSD, 스마트폰 저장장치의 기원이 되었다.

■ 패키징과 발열 제어의 진화

칩 자체만큼 중요한 것이 패키징 기술이었다.
트랜지스터가 밀집될수록 열이 칩 내부에 갇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열 방출 구조가 필요했다.

이 시기 등장한 대표적인 방식이
BGA(Ball Grid Array) 와 CSP(Chip Scale Package)다.
이들은 열 분산 효율을 높이고, 회로 연결을 단단하게 만들어
고속 동작에도 안정성을 확보했다.

칩과 외부 기판의 연결을 “점”이 아닌 “면”으로 바꾸는 발상이
훗날 3D 적층 반도체의 초석이 된다.

 

■ 무어의 법칙의 둔화, 그리고 새로운 방향

1990년대 후반, 인텔은 펜티엄 III와 펜티엄 4로 클럭 속도를 1GHz 이상 끌어올렸지만
열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발열로 인한 성능 저하(thermal throttling)가 발생했고,
무어의 법칙은 서서히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하나는 멀티코어 구조, 또 하나는 저전력 설계였다.
이 두 가지는 이후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과 AI 반도체 시대로 이어지는 핵심 기반이 된다.

■ 마무리 — “더 빠르게”에서 “더 효율적으로”로

1985~2000년은 반도체가 속도의 시대에서 효율의 시대로 전환된 시기였다.
고클럭 경쟁은 기술의 끝을 보았고,
그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열과 전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마주했다.

이 시기의 시행착오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은 냉각 기술, 회로 설계, 소재 과학, 아키텍처 혁신을 통해
다음 세대의 반도체를 준비했다.

“속도의 한계에서 탄생한 효율의 철학 — 그것이 21세기 반도체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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