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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진공관의 한계를 극복한 트랜지스터_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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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기계에서 시작된 전자의 시대

1940년대 초, 전자기기의 세상은 진공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진공관은 유리관 안에 진공을 만들어 전자를 흐르게 하는 장치로, 당시 라디오, 텔레비전, 군용 레이더, 초기 컴퓨터까지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이었다.
전기를 켜면 빛을 내며 작동하는 진공관은 마치 ‘전자의 전등’과도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뜨겁고, 너무 자주 고장 났다는 점이었다.
한 대의 진공관 라디오에는 수십 개, 초기 컴퓨터에는 수천 개의 진공관이 들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6년 등장한 세계 최초의 범용 컴퓨터 ENIAC이었다.
ENIAC는 18,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했는데,
한 번 전원을 켜면 열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며 하루에도 여러 번 고장이 났다.
냉각을 위한 대형 환기시스템이 필요했고,
전력 사용량은 소형 마을 하나가 쓸 전력 수준이었다.

즉, 당시의 전자기술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작게 만들 수 없고, 열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으며, 전력 효율이 나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절대 대중화될 수 없었다.

■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벨 연구소

1940년대 중반, 미국의 벨 연구소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
벨 연구소는 AT&T의 연구 부서로, 전화 시스템의 신호 증폭과 잡음 제거 기술을 개선하려 했다.
문제는 전화선이 길어질수록 신호가 약해져 ‘증폭기’가 필요한데,
당시의 진공관은 크고 전력 소모가 커서 전화망 전체에 적용할 수 없었다.

이때 벨 연구소의 세 명의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이 새로운 전자 증폭 장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반도체’라는 신소재였다.

반도체는 금속처럼 전기를 통하게도 하고, 절연체처럼 막기도 하는 신기한 물질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게르마늄과 실리콘.
이들은 온도나 불순물의 양에 따라 전기적 성질이 바뀌었고,
이 성질을 잘 제어하면 작고 효율적인 증폭기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 1947년, 세계를 바꾼 ‘트랜지스터’의 순간

1947년 12월 16일, 뉴저지의 벨 연구소 실험실.
브래튼과 비단은 게르마늄 조각 위에 금을 얇게 도금하고 두 개의 접점을 붙인 작은 장치를 완성했다.
전류를 흘려보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주 약한 전류가 강한 전류를 증폭시키는 현상, 즉 “전자의 증폭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트랜지스터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전류의 흐름을 ‘문처럼’ 여닫는 역할을 하며 입력 신호(작은 전류)를 받아서 출력 신호(큰 전류)로 증폭시킨다.

진공관과 같은 증폭 기능을 하면서도,
크기는 손톱보다 작고, 발열이 적으며, 전력 소모가 수백분의 1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전자의 세계에서 ‘미니어처 혁명’ 이 일어난 것이다.

■ 기술적 난관과 초기의 한계

하지만 초창기 트랜지스터는 완벽하지 않았다.
재료로 쓰인 게르마늄은 열에 약해 고온에서 불안정했고,
대량생산 공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 명의 과학자는 서로의 공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특히 쇼클리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팀을 떠나
이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게 된다.

이 갈등은 아이러니하게도 실리콘밸리의 시작점이 되었다.
쇼클리 연구소에서 갈라져 나온 젊은 엔지니어들이
훗날 페어차일드(Fairchild) 와 인텔(Intel)을 세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탄생 점이었다.

■ 진공관을 대체하며 세상을 바꾸다

1950년대에 접어들며 트랜지스터는 점차 개선됐다.
게르마늄에서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로 진화하면서
열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신뢰성이 높아졌다.
소니는 이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출시하며 대중시장을 열었다.
이때부터 전자제품은 “작고, 싸고, 가벼운” 방향으로 급속히 발전한다.

진공관 컴퓨터가 방 하나를 차지하던 시대에서,
트랜지스터 컴퓨터는 책상 위로 올라왔다.
이 작은 부품 하나가 인류의 정보처리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진공관이 전자의 불꽃을 켰다면, 트랜지스터는 전자의 문명을 열었다.”

■발열·전력 문제, 그리고 그 해결의 시작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단순히 ‘작아졌다’는 의미를 넘었다.
진공관의 가장 큰 문제였던 발열과 전력 낭비가 극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진공관은 작동 중 200~300°C까지 달아올라 냉각 장치가 필수였다.
반면 트랜지스터는 고체 상태의 반도체에서 전자가 이동하므로,
열 발생이 훨씬 적고 효율이 높았다.

이때부터 반도체의 핵심 과제는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전력 효율이라는 이 주제는
오늘날 AI 반도체·데이터센터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영원한 과제다.

■ 트랜지스터의 의미 — ‘작은 스위치가 만든 거대한 변화’

1947년의 트랜지스터 발명은 이후

집적회로(IC)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반도체

AI 칩
으로 이어지는 모든 기술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전류를 켜고 끄는 단순한 스위치 하나가
오늘날 3나노 공정의 수십억 개 트랜지스터 칩으로 확장되며
스마트폰, 자동차, 인공지능, 우주 탐사까지 연결되고 있다.

모든 현대 기술의 뿌리는, 결국 1947년 벨 연구소의 그 작은 금속 접점 하나였다.

■ ‘작게 만드는 힘’이 세상을 바꾼다

반도체의 역사는 크기를 줄이는 싸움이자, 열과 전력의 전쟁이었다.
진공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한 트랜지스터는
“전자를 제어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세상에 심어줬다.
이후 인간은 더 많은 계산을 더 작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디지털 문명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트랜지스터가 어떻게 ‘하나의 칩 안에 수천 개가 들어가는 집적회로(IC)’로 발전했는지 살펴본다.
거대한 혁신의 2막이 이제 막 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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