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랜지스터의 탄생 이후 — 새로운 도전에 직면
1947년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전자공학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진공관보다 작고, 빠르며, 전력 소모도 훨씬 적었다.
이 작은 반도체 소자는 곧 라디오, 텔레비전, 군사용 장비, 그리고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당연하게도 트랜지스터가 보급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전자기기의 기능이 향상되면서 더 많은 트랜지스터와 저항, 커패시터를 서로 연결해야 했다.
모든 부품을 얇은 전선으로 납땜해야 했고,
하나라도 불량이 생기면 전체 회로가 작동하지 않았다.
즉, 트랜지스터가 작아질수록 납땜과 배선은 많아진 것이다.
회로가 점점 거미줄처럼 얽히고 복잡해지니,
신호는 지연되며, 불량률과 제조 비용은 치솟았다.
■ 잭 킬비의 아이디어 — 부품을 하나로 합치다
1958년 여름, 미국의 엔지니어 잭 킬비(Jack Kilby)는 이런 생각을 했다.
“트랜지스터, 저항, 커패시터 모두를 한 덩어리로 합치면 납땜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는 게르마늄 조각 위에 작은 회로를 만들어 전류를 흘려보냈고,
놀랍게도 성공이었다.
1958년 9월 12일 — 인류 최초의 IC(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 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실험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제 전자회로의 모든 부품은 하나의 몸이 될 수 있다.”
■ 로버트 노이스의 혁신 — 실리콘과 평면(Planar) 공정
거의 비슷한 시기,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공동 창립자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킬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더 안정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실리콘 기반 평면(Planar) 공정’을 개발했다.
이 공정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얇은 산화막을 형성한 뒤,
그 표면에 회로를 새겨 넣는 방식이다.
덕분에 회로를 평면 위에 정밀하게 그릴 수 있었고,
불량률이 급격히 낮아지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결국 킬비의 발상과 노이스의 공정 기술이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집적회로(IC)가 완성되었다.
트랜지스터의 시대는 저물고, ‘칩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집적’의 의미 — 부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다
IC의 핵심은 부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는 발상이었다.
과거에는 회로마다 수천 개의 트랜지스터와 부품을 납땜해야 했다면,
이제는 그 모든 기능을 손톱만 한 칩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형화를 넘어
전력 효율 향상 — 신호 이동 거리가 줄어들어 소비전력이 감소
속도 향상 — 신호 지연이 줄어 연산 속도 급상승
비용 절감 —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전자제품 가격이 급락
즉, 집적회로는 “작고, 빠르고, 싸고, 안정적인” 기술 혁명이었다.
■ 냉전과 우주 경쟁이 키운 산업
1960년대는 냉전의 시대였다.
미국과 소련은 군사 경쟁뿐 아니라 우주개발 경쟁에 몰두했다.
미국 정부는 더 작고 신뢰성 높은 회로를 원했고,
그 답이 바로 IC였다.
NASA와 국방부는 IC 제조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초기엔 고가였던 IC의 단가가 빠르게 떨어졌고,
민간 산업에서도 사용이 확산되었다.
우주 경쟁이 곧 반도체 산업의 성장 엔진이 된 셈이다.
이 시기에 인텔, AMD, 모토로라 같은 기업들이 등장하며
전자산업의 판도를 바꿔나갔다.
■ 1971년, 인텔 4004 – 칩 안의 두뇌
집적회로의 발전은 단순한 회로 통합을 넘어
‘두뇌’를 칩 안에 넣는 단계로 진화했다.
1971년, 인텔은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Intel 4004를 발표했다.
이 칩은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내장하고,
초당 6만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4004는 계산기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이후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개념으로 발전한다.
“트랜지스터가 전자의 세포였다면, IC는 전자의 장기였고, CPU는 전자의 뇌였다.”
■ 미세화의 첫걸음 — 작아질수록 생기는 문제
IC의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또 생겼다.
트랜지스터 간 거리가 가까워지며 발열과 신호 간섭이 커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리콘 산화막(SiO₂)을 절연층으로 추가해
트랜지스터 간 전류 누설을 최소화했다.
또한 회로를 손으로 그리던 시대가 끝나고,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기술이 등장했다.
빛을 이용해 회로를 새기는 방식으로,
이 기술이 훗날 나노 공정의 기반이 된다.
■ 일본의 부상과 한국의 첫걸음
1960년대 후반, 일본 기업들이 빠르게 IC 기술을 흡수했다.
히타치, NEC, 도시바는 미국 기업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IC 대량생산 라인을 구축했고,
1970년대에는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한국도 이 시기 가능성을 인식했다.
1974년 삼성, 금성(현 LG), 현대가
각각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비록 초기에는 조립·패키징 수준이었지만,
훗날 메모리 산업으로 성장하는 씨앗이 이때 뿌려졌다.
■ 한계를 넘어선 발상, 그리고 다음 단계로
IC의 발명은 인간이 처음으로
전자기기 안에 ‘두뇌’를 심은 사건이었다.
납땜 선으로 얽히던 회로가 사라지고,
하나의 칩이 수천 개의 부품을 대신했다.
하지만 트랜지스터 수가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로 늘어나자
열, 전력, 복잡성이라는 새로운 벽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벽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훗날 전설이 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이 세상에 등장한다.
■ 마무리 — 납땜의 한계를 넘은 인간의 상상력
1958년 잭 킬비의 외로운 실험실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는
10년 만에 전 세계 산업 구조를 바꿔놓았다.
IC의 발명은 트랜지스터 시대의 한계를 넘어
“전자기기의 집약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 전환점이었다.
“수많은 부품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전자기기는 비로소 ‘지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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