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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나노공정과 모바일 혁명 – 새로운 질서의 등장_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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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세기의 벽 앞에서

2000년대 초, 반도체 산업은 전례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공정 미세화의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0.18㎛ → 0.13㎛ → 90nm까지는 순조로웠지만,
65nm 이하로 내려가자 열과 누설전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트랜지스터는 이미 머리카락 굵기의 1/1000보다 작았고,
전자는 너무 가벼워져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 현상까지 일어났다.
이제 전자가 “벽을 뚫고 새어 나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평면(2D)에서는 한계다.”

■ FinFET의 등장 — 트랜지스터를 세우다

2000년대 초, 미국 UC버클리의 천밍치안(Chenming Hu) 교수 연구팀은
전류 누설을 막기 위한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를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FinFET(Fin Field Effect Transistor), 즉 ‘지느러미형 트랜지스터’다.

기존의 평면 트랜지스터가 회로 기판 위에 얇게 깔린 구조였다면,
FinFET는 트랜지스터의 게이트(전류 통로)를 세워서 3면에서 전류를 제어하는 구조다.
이렇게 세워진 ‘핀(fin)’ 모양 덕분에 전류 누설이 줄고,
작은 전압으로도 안정적인 동작이 가능했다.

이 구조는 마치 평면 도로 위의 차선을 고층 도로로 바꾼 것과 같았다 —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발명은 이후 인텔, 삼성, TSMC 등
모든 첨단 반도체 기업의 공정 혁신의 근간이 된다.
실제 상용화는 2011년 인텔 ‘Ivy Bridge’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씨앗은 이미 2000년대 초에 뿌려졌다.

■ 90nm 시대의 개막 — 빛으로 새긴 원자의 세계

2000년대 중반, 포토리소그래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90nm 공정부터는 기존의 자외선 대신 극심 자외선(Deep UV) 이 도입됐다.
이 빛은 파장이 짧아 더 정밀한 회로를 새길 수 있었고,
반도체의 세계는 ‘원자 단위의 조각 예술’로 바뀌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장비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리소그래피 장비 한 대의 가격은 수백억 원을 넘어섰고,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 + 자본력’이 결합된 초격차 산업으로 진화했다.

이 시기부터 반도체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 모바일의 시대 — 전력 효율의 부활

2007년, 세상을 바꾼 제품이 등장했다.
바로 애플 아이폰(Apple iPhone).
이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손 안의 컴퓨터’였고,
그 핵심에는 모바일용 SoC(System on Chip) 이 있었다.

SoC는 CPU, GPU, 메모리, 통신 모듈 등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구조다.
이는 PC 중심의 고성능 경쟁에서
전력 효율 중심의 모바일 경쟁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이폰의 칩은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인텔처럼 클럭을 높이지 않고
“적은 전력으로 최대 성능을 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 선택은 곧 ‘저전력 혁명’의 서막이었다.
2000년대 후반의 반도체는
속도보다 효율, 성능보다 지속시간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 체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 ARM의 부상과 인텔의 위기

이 시기 가장 주목받은 기업 중 하나가 바로 ARM Holdings였다.
ARM은 직접 칩을 생산하지 않고,
저전력 설계 기술(ISA, Instruction Set Architecture)을 라이선스로 판매했다.

전 세계 수백 개 기업이 ARM 기술을 사용해
각자의 모바일 칩을 제작했다.
삼성의 Exynos, 퀄컴의 Snapdragon, 애플의 A시리즈,
모두 ARM의 설계 위에서 탄생했다.

반면, 인텔은 데스크톱 CPU 중심의 전략을 고수했다.
고성능에는 강했지만, 모바일 환경에서는
발열과 전력 효율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결국 인텔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모바일 혁명의 주도권은 ARM 진영으로 넘어갔다.

 

■ 플래시 메모리와 저장장치의 진화

2000년대는 메모리 반도체의 재 도약기이다.
NAND 플래시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서
기존 하드디스크(HDD)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고,
속도와 내구성에서 HDD를 압도했다.
이 기술 덕분에 USB,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그리고 이후의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가 탄생했다.

삼성전자는 2002년 세계 최초로 1Gb NAND 플래시를 양산했고,
이후 2007년 SSD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시장의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CPU가 뇌라면, 메모리는 기억이다.
이 시기 인류는 드디어 작고 빠른 기억을 손에 쥐었다.”

■ 미세공정의 끝을 향해 — 45nm와 32nm

2000년대 후반, 공정 기술은 65nm → 45nm → 32nm로 진입했다.
이 단계에서는 High-k/Metal Gate 기술이 필수였다.
이는 기존의 실리콘 산화막 대신 유전율이 높은 신소재를 사용하여
트랜지스터 누설 전류를 억제하고, 게이트 제어력을 강화한 방식이다.

이 공정 기술은 발열을 낮추면서도 성능을 유지시켜
CPU의 한계 돌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텔의 ‘펜린(Penryn)’과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
삼성의 ‘45nm HKMG 공정’이 모두 이 시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러,
제조 장비·소재·설계·공정의 모든 요소가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작동했지만,
그 비용은 이전의 수십 배였다.

■ 산업 지형의 재편 — 삼국시대의 형성

2000년대 후반, 반도체 산업은 명확히 세 축으로 재편되었다.

인텔 – CPU 중심, 첨단 공정 기술의 선두
삼성전자 – 메모리 중심, 대규모 생산력
TSMC – 파운드리(위탁생산) 중심의 새로운 모델

TSMC는 “설계는 고객이, 생산은 우리가”라는 분업 구조를 정착시켰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전문화와 분업화를 이끌며
이후 2010년대 AI·모바일 생태계의 근간이 된다.

■ 마무리 — 모바일 혁명이 바꾼 반도체의 철학

2000~2010년은 “작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연결되게”라는 키워드의 시대였다.
트랜지스터는 2D에서 3D로 진화했고,
칩은 단순 계산 장치를 넘어
에너지 효율·통신·저전력·집적의 예술품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꾼 이유는
그 안의 반도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CPU, GPU, 메모리, 통신용 칩이 하나로 통합된 SoC의 탄생은
인류의 기술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시켰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 영향력은 세상을 덮을 만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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