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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실리콘, 그 이후의 반도체_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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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이 다한 시대, 그 이후를 묻다

2020년대 후반, 반도체 산업은 한 가지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다.
“실리콘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3나노를 지나 2나노, 1.4나노 공정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미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원자 몇 개 수준이다.
전자가 이동할 공간조차 줄어들면서
양자터널링, 누설전류, 발열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무어의 법칙은 이제 ‘법칙’이 아니라
과거의 신화로 남았다.
이제 반도체의 역사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두뇌’를 만들 수 있을까?”

■ 포스트 실리콘의 세 가지 축

실리콘 이후의 반도체는 세 갈래의 길 위에 서 있다.
①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
② 뉴로모픽(Neuromorphic) 칩
③ 광(光) 기반 반도체 및 신소재 반도체

이 세 가지는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 인간형 연산체계.”

 

■ ① 양자컴퓨터 – 계산의 개념 자체를 바꾸다

양자컴퓨터는 트랜지스터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계산 논리 그 자체를 새로 정의한 기술이다.

기존 반도체는 전류가 흐르거나(1), 끊기는(0) 이진 논리를 따른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라는 단위를 사용해
1과 0이 동시에 존재(superposition) 하는 상태에서 계산을 수행한다.

이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병렬 연산 능력이 기존 슈퍼컴퓨터의 수천만 배에 달할 가능성을 가진다.
IBM, 구글, 인텔, 리게티(Rigetti) 등은
이미 100~1000큐비트 규모의 장치를 실험 중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문제는 불안정성(Decoherence) 이다.
큐비트는 외부 환경의 미세한 온도 변화나 진동에도 쉽게 붕괴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절대영도(-273℃) 수준의 초저온에서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2030년대 중반까지는
양자컴퓨터가 일반 상용화되기보다, 특정 고급 연구 분야나 암호해독용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양자컴퓨터는 반도체의 대체재가 아니라,
계산이라는 인간의 언어를 새로 쓰는 도전이다.”

■ ② 뉴로모픽 칩 – 인간의 뇌를 닮은 반도체

반도체의 또 다른 진화 방향은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Neuromorphic) 칩이다.

기존 AI 반도체는 여전히 ‘계산 중심’ 구조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계산이 아니라 연결과 학습으로 작동한다.
시냅스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필요한 회로만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은 놀랍게도 컴퓨터보다 수천 배 높다.

인텔의 ‘Loihi 2’, IBM의 ‘TrueNorth’, 삼성전자의 ‘뉴로모픽 프로토타입’ 등이
이러한 방향성을 실험하고 있다.

뉴로모픽 칩은 스스로 학습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동시에 연산하는 메모리 인 컴퓨팅(Memory-in-Compute) 구조를 채택한다.
이 덕분에 기존의 CPU–메모리 간 병목을 완전히 해소한다.

2030년대 중반에는
소형 로봇, 자율주행 차량, 웨어러블 기기 등에
이러한 뇌형 반도체가 탑재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자가 아닌 시냅스의 언어로 사고하는 칩 —
그것이 포스트 실리콘 시대의 철학이다.”

 

■ ③ 광컴퓨팅과 신소재 – 전자가 아닌 빛으로

한편, 실리콘의 전자 이동 속도에 한계를 느낀 연구진들은
전자가 아닌 빛(Photon)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를 광컴퓨팅(Photonic Computing) 이라 부른다.

빛은 전자보다 훨씬 빠르고, 발열이 적으며,
동시에 수많은 파장을 병렬로 처리할 수 있다.
즉, 한 번의 연산에 다중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라이트매터(Lightmatter), 영국의 옵티얼(Optalysys),
한국의 ETRI 등은 광트랜지스터·광메모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만약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AI 모델의 연산 속도는 현재보다 수백 배 이상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탄화규소(SiC), 질화갈륨(GaN), 이황화몰리브덴(MoS₂) 등
신소재 반도체가 이미 전력칩·자동차·우주항공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 포스트 실리콘의 과제 – 에너지, 윤리, 공급망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시대에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에너지 효율:
AI 연산이 폭발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엔 전 세계 전력의 5%를 넘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속 가능한 반도체 생산(재생에너지, 냉각 기술)은 필수 과제가 된다.

윤리와 데이터 편향:
AI 칩이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게 될수록,
편향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문제는 더 커진다.
‘성능보다 책임’이 중요한 시대가 온다.

공급망 리스크:
첨단 공정과 신소재는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웨이퍼는 일본, 설계는 미국, 생산은 대만·한국.
한 나라의 정치적 긴장이 세계 산업을 멈출 수 있는 구조다.

즉, 포스트 실리콘 시대의 경쟁은 기술보다 생태계의 안정성에 달려 있다.

■ AI 반도체와 양자의 융합 – 제4의 계산 패러다임

가장 흥미로운 미래는
AI + 양자컴퓨팅의 융합이다.
양자컴퓨터는 엄청난 병렬 계산을,
AI는 그 계산의 방향성을 제공한다.

이 둘이 결합하면
지금의 LLM(거대언어모델)보다 수천 배 빠른 학습이 가능하고,
자율 탐색과 창의적 문제 해결이 가능한
“진정한 지능형 반도체”의 서막이 열린다.

2035년 이후, 인간의 뇌 신경망을 완전히 모사한
‘하이브리드 뉴로-양자 칩(Neuro-Quantum Chip)’이
연구 단계에서 상용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트랜지스터는 전자를 제어했지만,
이제 우리는 지능을 제어하려 한다.”

■ 마무리 – 반도체, 다시 인간을 닮아가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에서 시작된 80년의 여정은
이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돌아왔다.
작고 빠른 기계의 시대는 끝나고,
이해하고 학습하며 에너지를 아끼는 ‘생각하는 반도체’의 시대가 열린다.

실리콘은 한계를 맞았지만,
그 위에서 피어난 인간의 상상력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양자, 뉴로모픽, 광, 신소재 —
이들은 모두 “더 작게가 아니라, 더 깊게 생각하는 기술” 을 향하고 있다.

 

“포스트 실리콘 시대는 기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두뇌가 기술을 닮아가는 또 다른 진화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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