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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ASML ― 빛으로 세상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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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반도체 장비 회사는 수백 개가 있다.
그러나 단 한 곳, 네덜란드의 ASML만은
인류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수준의 ‘빛’을 다룬다.

이 기업이 만들어내는 EUV(Extreme Ultraviolet) 노광기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다.
그건 인류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형태의 빛이며,
동시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복제할 수 없는 기술이다.

2025년 현재, 이 장비 없이는
5나노 이하 반도체를 제조할 수 없다.

즉, ASML 한 회사가 ‘빛을 공급하지 않으면’
삼성도, TSMC도, 인텔도
최신 칩을 만들 수 없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심장은
네덜란드 펠드호펜이라는 조용한 도시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EUV 노광기 한 대의 가격은 약 2,000억 원(1.5억 달러).
총 부품 수가 무려 45만, 무게는 180톤,
협력사는 800여 개 기업에 달한다.

조립에는 1년이 걸리고,
완성된 장비는 보잉 747 전용기 여러 대에 분해 실어야 할 정도로 거대하다.

TSMC, 삼성, 인텔이 사용하는 모든 첨단 공정 라인에는
이 장비가 최소 수십 대씩 깔려 있다.
한 공장에 들어가는 ASML 장비 가격만 합쳐도 조 단위다.

ASML의 기술은 단순히 정밀한 기계공학이 아니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빛 그 자체의 물리학이다.

EUV의 파장은 13.5나노미터.
공기 중에서 바로 사라지는,
인간이 다루기에는 너무 짧고 섬세한 빛이다.

따라서 공정은 완전한 진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빛은 렌즈가 아니라 거울로 반사된다.

이때 사용되는 거울은 독일 Carl Zeiss가 만든다.
거울 한 장의 가격은 1,000만 달러(약 130억 원) 넘는다.
표면 오차는 원자 1개보다 작고,
빛은 14장의 거울을 연속 반사하며 회로를 새긴다.

거울 한 장의 반사율이 70%이므로,
마지막에 살아남는 빛의 세기는 0.7¹⁴ — 1%도 되지 않는다.
그 단 1%의 빛으로 인류의 문명을 새긴다.

빛의 원천도 경이롭다.

미국 Cymer가 만든 레이저가 초당 5만 번 이상
주석(Sn) 방울을 폭격한다.

그 폭격으로 생긴 플라즈마가
13.5나노미터 파장의 EUV 빛을 방출한다.

주석 방울 하나의 크기는 머리카락의 1/3인 25마이크로미터.
레이저와의 충돌 오차는 30나노미터 이하다.

지구에서 쏜 총알이 달 위의 동전을 맞히는 정확도와 같다.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진공 상태에서 동작한다.
빛, 진공, 플라즈마, 거울, 전자, 소프트웨어가
초미세 정밀도로 완벽히 동기화되어야
단 한 장의 웨이퍼가 노광된다.

그래서 ASML의 장비는
단순한 산업 제품이 아니라 국가급 기술결정체다.

EUV 개발에 투입된 금액은 약 500억 달러(70조 원).
25년 동안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참여했지만,
최종 조립과 제어 알고리즘은 오직 ASML만이 가진다.

그들의 기술은 그 어떤 특허나 법률보다 강력한 기술 독점이다.

ASML은 1년에 40대 이하의 EUV 장비만 생산한다.
그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 TSMC, 인텔 — 단 세 곳뿐이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그 결과, EUV 보유국과 비보유국 사이에는
사실상 ‘문명의 단절선’이 생겼다.

중국의 SMIC는 수십조 원을 들여도
EUV 없이 5나노 이하 공정에 진입할 수 없다.
빛을 통제하는 자가 기술을 통제하고,
기술을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통제한다.

ASML의 엔지니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반도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빛을 통제한다.”

그 말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TSMC의 3나노, 삼성의 GAA, 인텔의 RibbonFET —
이 모든 첨단 공정은 ASML의 빛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ASML은 칩을 찍지 않지만,
인류가 어디까지 계산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문명의 스위치를 쥐고 있다.

2025년, ASML은 차세대 High-NA EUV 장비를 출하했다.
한 대 가격은 4,000억 원(3억 달러).
기존 EUV보다 1.7배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며,
8나노 이하 회로를 새길 수 있다.

이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기업 역시
TSMC, 삼성, 인텔뿐이다.

이제 이 세 기업은 ASML의 공급 일정에 맞춰
차세대 공정을 계획해야 한다.
빛의 흐름이 곧 산업의 리듬이 된 셈이다.

ASML의 존재는 기술을 넘어선다.
그들은 “빛의 철학자”이자 “권력의 관리자”다.

미국은 EUV를 전략물자로 분류해
중국으로의 수출을 차단했고,
중국은 그 빛을 흉내 내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EUV는 이제 장비가 아니라
국가 간 신뢰의 척도이자 기술패권의 경계선이 되었다.

ASML이 빛을 멈추면
지구의 AI 서버도, 스마트폰도, 슈퍼컴퓨터도 멈춘다.

그들의 장비는 인류가 스스로 만든
가장 완벽한 질서이자, 가장 강력한 독점이다.

그러나 그 독점은 단순한 시장의 힘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한 모든 과학과 기술, 신념의 결정체다.

ASML은 인간이 ‘빛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빛의 통제가
문명을 분리하고 세계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었음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한다.

ASML의 빛은 인류의 기술적 승리이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EUV는 단순한 광선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을 새기는 인간의 손끝에서 태어난,
신의 빛에 가장 가까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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