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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Google ― TPU로 AI의 속도를 재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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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역사는 결국 속도와 효율의 경쟁이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빨리 계산하느냐가 인공지능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원리를 가장 철저하게 이해한 회사가 있다.
바로 구글(Google) 이다.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지금은 AI의 뇌를 직접 설계하는 반도체 기업이기도 하다.

CPU와 GPU로는 부족했던 시대

2010년대 초, 구글의 내부 엔지니어들은 이상한 문제에 부딪혔다.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서버 한 대가 처리해야 하는 연산량이 수백 배로 폭증한 것이다.
특히 음성 인식, 번역, 이미지 검색, 추천 시스템 같은 서비스는
기존의 CPU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GPU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그래픽 연산 중심으로 설계된 GPU는
전력 소모와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때 구글은 결단했다.

“AI는 우리 서비스의 핵심이다.
남이 만든 칩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구글의 반도체 역사를 열었다.

TPU의 탄생 ― AI만을 위한 칩

2016년, 구글은 첫 번째 TPU(Tensor Processing Unit) 를 공개했다.
이 칩은 GPU처럼 그래픽을 그리지도 않고,
CPU처럼 범용 연산을 하지도 않는다.
오직 AI 모델이 사용하는 수학 연산(행렬곱, 텐서 계산) 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TPU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철저했다.
수천 개의 연산 유닛이 동일한 명령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SIMD).
즉, ‘AI를 위한 병렬 두뇌’였다.
그 결과, TPU는 GPU보다 훨씬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구글은 곧 모든 검색어, 음성 비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TPU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AI는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진화했다.

TPU v2 ~ v5 ― 구글 클라우드의 심장

첫 세대 TPU의 성공 이후,
구글은 매년 새로운 세대를 공개했다.

TPU v2 (2017) : AI 학습용으로 설계, FP16 연산 지원

TPU v3 (2018) :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액침 냉각 시스템’ 도입

TPU v4 (2021) : 대규모 클러스터(수천 개 TPU 연결)로 슈퍼컴퓨터 수준 성능 달성

TPU v5e / v5p (2024) : 전력 대비 성능 효율을 3배 이상 향상

이제 TPU는 구글 클라우드의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모든 기업과 연구소가
구글의 TPU 서버를 임대해 사용한다.

즉, TPU는 단순한 칩이 아니라 ‘AI 인프라 그 자체’다.

구글의 철학 ― 데이터를 위한 칩

구글은 TPU를 단순히 성능 경쟁의 도구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빠른 칩’이 아니라 ‘데이터를 더 잘 활용하는 칩’이었다.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말한다.

“AI는 결국 데이터다.
우리는 데이터를 낭비하지 않는 칩을 원했다.”

CPU나 GPU는 범용성을 위해 설계되어
데이터의 이동·저장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반면 TPU는 구글의 AI 프레임워크인 TensorFlow 에
완벽히 최적화되어 있다.
즉, 데이터가 이동하기 전에 이미 필요한 연산을 준비하는 칩이다.

이 구조적 통합은 구글의 가장 큰 강점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데이터 
모든 것이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지배력

흥미로운 건,
구글이 TPU를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처럼 GPU를 판매하지 않고,
TPU는 오직 자사 서비스와 구글 클라우드 사용자에게만 제공된다.

이는 전략적인 선택이다.
TPU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구글 생태계를 묶는 ‘보이지 않는 지배 도구’이기 때문이다.
AI 학습을 위해 구글 클라우드를 쓰면,
자연스럽게 TPU 환경을 쓰게 되고,
결국 모든 AI 모델이 구글의 언어로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구글의 진짜 반도체 전략이다.
칩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칩으로 데이터와 생태계를 통제하는 것.

효율이 곧 철학

TPU는 빠르지만, 구글이 진짜로 자랑하는 건 효율이다.
같은 연산을 더 적은 전력으로 수행하는 것 —
이 단순한 목표는 구글이 모든 기술에서 추구해온 핵심 가치다.

구글 데이터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연산 구조를 가진다.
수천 개의 TPU가 동시에 작동하면서도
냉각 에너지 사용량은 GPU 클러스터의 절반 수준이다.

이건 단순히 기술적 승리가 아니라,
AI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은 “누가 더 많이 계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적게 낭비하느냐”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 문화 ― 속도보다 완성도를 중시하는 집단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을
“AI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속도보다 완성도’를 선택해왔다.
TPU의 첫 프로토타입은 GPU보다 느렸고,
두 번째 버전은 발열 문제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이
결국 AI용 하드웨어의 표준을 바꿔버렸다.

이건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끈기 있게 사고하고, 개선하며, 다시 설계하는 문화의 결과였다.

속도를 넘어, 구조를 설계하다

구글은 이제 단순한 인터넷 기업이 아니다.
그들의 서버, 데이터센터, 클라우드는
하나의 거대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며,
그 심장에는 TPU가 있다.

TPU는 단순히 연산을 빠르게 하는 칩이 아니라,
AI가 존재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바꾼 발명품이다.

CPU는 논리를, GPU는 연산을,
그리고 TPU는 ‘지능의 속도’를 설계한다.

구글은 그 속도로
AI의 미래를 한 세대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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